며칠 전 ‘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’을 다녀왔습니다. 유독 눈에 밟히는 기둥 하나가 있었습니다. 1층 진료실 앞에 있는 기둥. 그 기둥 앞에서 이길여 원장님에게 간절하게 사정하고 있는 스물일곱의 젊은 내가 보입니다. 48년 전, 저는 유산을 하기 위해 이길여 산부인과에 여덟 번 다녀갔습니다.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었습니다. “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. 아이를 유산시켜 주세요.” 간절히 애원하고 빌었습니다. 하지만 원장님은 마음 아픈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저의 마음을 되돌려 놓으려고만 하셨습니다. 그 후에도 얼마나 애걸을 했는지 모릅니다. 몇 번이나 계속 사정을 하자 원장님은 ‘남편과 함께 와야 한다’는 핑계를 대시며 끝내 아이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. 그때는 얼마나 야속했는지요. 젊은 나는 그때 이길여 원장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.
만약 원장님이 아이를 지켜주지 않았더라면, 한 생명은 피어나지도 못했을 겁니다. 딸 아이가 인생의 의미인 저 또한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. 옛 이길여 산부인과가 있던 자리,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‘원장님 감사합니다. 감사합니다’ 수백 번을 읊조립니다.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. 원장님, 감사합니다. 정말 감사합니다.